고추와 매운맛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 신호입니다. 캡사이신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 물이 왜 소용없는지, 그리고 이미 매워진 요리를 되돌리는 네 가지 방법.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혀에는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 수용체가 있고, 매운맛 수용체는 없습니다. 캡사이신이 자극하는 것은 TRPV1, 원래 43도 이상의 열을 감지하는 통증 수용체입니다. 뇌는 그것을 화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맛있게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고, 온도를 낮춰도 매움이 줄지 않는 것이고, 계속 먹으면 무뎌지는 것입니다. 다른 다섯 가지 맛과는 계통이 다릅니다.
씨가 아니라 흰 심지다
고추의 매운 성분은 태좌(胎座) — 씨가 붙어 있는 흰 심지 부분에 몰려 있습니다. 씨 자체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씨를 털어내면 실제로 덜 매워지는데, 그건 씨를 뺄 때 심지가 함께 떨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하려면 칼끝으로 흰 심지를 긁어내는 편이 낫습니다. 씨만 조심스럽게 골라내고 심지를 남기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물은 도움이 안 된다
캡사이신은 기름에 녹고 물에 녹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면 입안에 퍼뜨리기만 하고 씻어내지 못합니다.
효과가 있는 것들:
- 유제품. 우유의 카세인이 캡사이신을 붙잡아 떼어냅니다. 인도에서 라씨를, 태국에서 코코넛 밀크를 함께 내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 기름과 지방. 캡사이신이 녹아 들어갑니다.
- 설탕. 통증 신호 자체를 덜 느끼게 합니다.
- 알코올은 이론상 맞지만 도수가 낮으면 실효가 없습니다.
고추는 매움 담당이 아니라 각자 역할이 다르다
품종을 매움 순으로만 보면 요리를 망칩니다.
- 카슈미르 고추는 색 담당입니다. 매움은 약하고 붉은색이 진해서, 로건 조쉬나 빈달루에서 3큰술씩 들어가도 한국식 기준으로는 순합니다.
- 한국 고춧가루는 향과 단맛이 있는 쪽입니다. 같은 양을 카슈미르 고추 대신 쓰면 색은 덜 나고 향은 더 납니다.
- 태국 쥐똥고추는 매움 담당입니다. 팟카파오에서 2~3개가 하는 일을 한국 청양고추 2~3개로 흉내내기 어렵습니다.
- 말린 고추와 생고추는 다른 재료입니다. 말리면 신선한 풋내가 사라지고 건과일 같은 단맛과 훈연 향이 생깁니다. 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넣는 셈입니다.
기름에 볶아야 열린다
캡사이신과 색소 모두 기름에 녹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물에 풀면 향이 반만 열립니다. 기름에 30초에서 1분 볶으면 기름 전체가 붉어지고 향이 확 달라집니다(향신료 깨우기).
다만 가루 고추는 30초면 탑니다. 그래서 로건 조쉬는 고춧가루를 넣기 전에 반드시 불을 낮추고, 마라탕은 기름 온도를 낮게 유지합니다. 탄 고추의 쓴맛은 두 시간을 끓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매워졌을 때
캡사이신은 가열해도 날아가지 않습니다. 끓여서 매움을 뺄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넷뿐입니다.
- 지방을 더한다. 코코넛 밀크, 생크림, 버터, 요구르트.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 단맛을 더한다. 설탕이나 꿀 한 작은술이 체감 매움을 눈에 띄게 낮춥니다.
- 산을 더한다. 라임이나 식초는 매움을 줄이지는 못하지만 주의를 분산시킵니다.
- 양을 늘린다. 물이 아니라 감자·두부·밥처럼 흡수하면서 부피를 만드는 것을 넣습니다. 물만 부으면 매움만 남고 나머지 맛이 다 묽어집니다.
떡볶이가 매워졌을 때 물을 붓는 것보다 설탕과 어묵을 더하는 편이 나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매운 것을 다루는 손
캡사이신은 물로 씻기지 않으므로 고추를 다듬은 손을 물에만 씻고 눈을 만지면 그대로 옮겨갑니다. 기름을 손에 문지른 뒤 비누로 씻으세요. 많은 양을 다룰 때는 장갑이 답입니다.